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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신라 천 년의 수도 경주 둘러보기 2탄: 대릉원 일원, 계림, 포석정, 분황사, 문무대왕릉

by 맬럭키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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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둘러보기 2탄


 
 
  오늘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 둘러보기 2탄에서는 대릉원 일원, 계림, 포석정, 분황사, 문무대왕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대릉원 일원

 


  경주 시내 곳곳에는 집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고분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경주 대릉원 일원은 가장 규모가 큰 고분군으로 신라 초기의 왕, 왕비, 귀족들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대릉원 일원 안의 각 고분은 마치 높은 언덕처럼 그 크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대릉원은 신라시대의 정치와 문화, 무덤의 구조와 조형 등을 엿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유산임을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계림


  계림은 경주 김 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입니다. 신라시대 중기 신라 탈해왕이 어느 날 밤에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어 다음날 숲으로 가보니 나뭇가지에 걸린 황금 궤짝이 있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궤짝을 열어보니 잘생긴 사내아이가 있었다고 하네요. 탈해왕은 아이가 금궤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을 '김'이라 하고, 아이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보살폈다고 하지요. 그 뒤 닭이 울었던 숲을 '계림'으로 불리게 되었고 김알지는 경주 김 씨의 시조가 되었답니다.
 
 
 

포석정

 
  포석정은 통일신라시대 때 별궁이 있었던 곳이나 현재 건물은 모두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포석정 터를 살펴보면 돌에 구불구불하게 홈을 파 놓은 모습이 수로로 보이며, 아마 그 홈에 물을 채운 수로에 임금과 신하들이 술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제사에 쓰는 그릇과 술잔이 발굴되기도 하여 포석정이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곳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분황사

 
  분황사는 선덕 여왕 때 지은 신라 왕실의 사찰입니다. 분황사에는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인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습니다. 모전석탑은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도 있고 7층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는 3층까지 밖에 남아있지 않아 원래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문무대왕릉

 
  경주 문무대왕릉은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의 수중릉입니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삼국을 통일하고 나라를 다스릴 체제를 정비했는데, 문무왕은 죽을 때까지도 나라의 평안을 걱정하여 자신이 죽은 뒤 화장하여 그 유골을 동해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에 후손들이 문무왕의 유골을 동해 바다의 어느 바위 주변에 뿌리고 장례를 치렀고, 그 이후부터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고 불렀습니다.
  문무왕은 아들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주었는데, 자신이 죽은 뒤 신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바다를 향해 피리를 불면 자신이 용이 되어 나타나 신라를 지키겠다고 했다고 전해지니 문무왕의 나라 사랑이 정말 대단하지요.
 

 

 신라 천 년의 수도 경주 둘러보기 1탄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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